[Frontier #11] Vision Pro: The Next Step for Humanity
애플 비전 프로를 보고 든 생각. 너무 과찬 아니냐고요? 제가 설득해볼게요.
비전 프로 이야기에 들어가기 앞서 역사 이야기를 간략하게 해보고자 한다. 약간 지루해도 조금만 참고 읽다보면, 흥미진진한 본론으로 연결될 것이다.
expansion of space and time
“인류 문명의 역사는 시공간 확장의 역사다. 기차를 발명해서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확장했고, 전화기 발명으로 내가 의사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확장했다. 백 년 전 조선 시대 때 사람은 평생 마을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국민은 더 넓은 공간을 경험하며 산다.”
비전 프로가 발표되었을 때, 마침 유현준 건축가의 공간의 미래를 읽고 있었는데, 가슴을 때리는 문장이 여럿 등장해 도움을 받을 예정이다.1
인류 역사를 바꾼 흐름들을 일부 살펴보자.
이동수단의 발전
최초 도보이동, 이후 동물을 길들여 이동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기차가 등장하며 이동 속도 급격하게 향상
이를 소형화 + 개량하여 자동차 개발, 대량 양산
비행기를 이용하여 전세계를 24시간 안에 이동
소통 기술의 발전
최초에 불, 동물 혹은 인간의 직접 이동(e.g. 마라톤의 유례)으로 통신
전화가 발명되며 장거리 통신 급격히 발전
인터넷을 통하여 음성 뿐 아니라, 영상까지 실시간으로 송신 가능해짐
기록 기술의 발전
인간이 진화하며 언어와 이를 기록할 수 있는 문자 발명
문자를 대량 인쇄할 수 있는 방법이 발명되며, 르네상스 시작
인터넷을 통하여 누구나 기록을 남길 수 있고, 기록을 읽을 수 있게됨
이런 흐름들에 공통점이 있다면, 개개인이 경험할 수 있는 시공간을 확장했다는 것.
이동수단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수십 시간 안에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는 시대에 살게 되었다.
→ 시공간의 확장, 더 빠르게, 더 멀리 이동할 수 있게 됨장거리 소통이 발전하며 우리는 실시간으로 세계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화상통화를 할 수 있다.
→ 시공간의 확장, 더 빠르게, 더 멀리 소통할 수 있게 됨기록 기술이 발전하며 우리는 전세계의 정보를 모아둔 인터넷에 기록된 정보를 읽고, 기록을 추가할 수 있다.
→ 시공간의 확장, 더 빠르게, 더 멀리 있는 정보를 읽고 기록할 수 있게 됨
우리는 이러한 초연결 사회의 열매를 마음껏 맛보고 있기에 체감이 덜 될 수도 있지만, 시공간이 확장하면서 과거엔 상상하기 힘든 일들을 해내고 있다 (e.g. 국제무역, 공동연구 등).
개인적으로는, 시공간의 확장에서 NEXT STEP이 무엇일지에 대한 큰 기대감이 없었다. 그러나 공간 컴퓨팅의 등장으로 새로운 가능성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100% VR이 아닌, 현실 세계와 적절한 블랜딩(blending)을 통하여 우리에게 와닿는 혁신을 제시한다. 애플의 영상을 보면 다음과 같은 확장이 일어난다:
타인과 곁에 있지 않아도, 곁에 있는 것 같은 경험
Facetime을 통하여 life-size로 영상 통화, 상대방에게도 AI 생성된 영상 송출
과거의 경험을 3D로 플레이백하는 경험
이를 위한 3D 카메라 버튼까지
3D 생성된 환경에서 거대한 스크린을 보는 경험
원룸에서도 초대형 영화관과 같은 공간감 형성
9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소개된 사례만 3개이다. 애플이 ‘공간 컴퓨팅 생태계’를 열어줌으로써 더 많은 킬러 앱(killer application)들은 뒤따라올 것이다. 이제 거실 쇼파에서 전 세계 + 가상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이는 인류의 역사를 한 번 더 바꿀, 궁극적인 시공간의 확장으로 보인다.
face to face experience
시공간을 확장하는 디바이스가 높은 포텐션을 가지고 있는 건 어찌 보면 자명하다. 그렇기에 다른 빅테크 기업들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구글은 구글 글래스, 메타는 퀘스트로 AR/VR에 도전했다. 왜 이번에는 다를까?
단순히 애플이어서는 아니다. 근본적으로 공간 컴퓨팅이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비교를 위해 구글 글래스부터 살펴보자.
google glass
구글 글래스는 야심 찼지만, 미완성된 상태에서 새 버전의 출시와 소멸을 반복하며 유저들에게 잊혀갔다.
구글 글래스는 비전 프로와 주요 가치 제안이 다르다. 구글 글래스는 일종의 AR 도우미로, 다양한 기능들을 HMD(Head Mounted Display)로 제공하는 제품이었다. 예로 기존에 표지판을 번역하기 위해서는 사진을 찍고 업로드해야 했으나, 구글 글래스를 활용하면, 실시간으로 번역된 텍스트를 HMD에 띄워준다.
그러나 이 정도로 시공간의 확장을 이루었다고 보기에는 미약하며, 스마트폰 화면을 HMD로 옮겨온, 매체의 변화 정도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겠다.
구글 글래스의 기능들은 (대부분) 핸드폰에서도 실행 가능했고, 기술적인 미흡함과 높은 가격으로 인하여 큰 효용을 느끼지 못한 대중들에게는 니시(niche)일 뿐이었다. 결국 23년 공식적으로 사업을 종료했다.
meta quest
메타 퀘스트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 유현준 건축가의 글을 다시 한번 빌린다.
대인 관계의 가장 기본은 타인의 얼굴을 보고 나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 가까운 사람과는 신체적 접촉인 악수를 한다. 인간의 눈은 다른 동물과는 다르게 흰자위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이 사람이 멀리서도 다른 사람이 어디를 쳐다보는지 알 수 있도록 진화된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설명한다. 인간이 다른 동물을 압도할 수 있었던 것은 언어와 표정을 통해 집단 내에서 의사소통이 잘 됐고 따라서 집단의 규모를 키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메타버스의 대중적 확산이 쉽지 않은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얼굴 보면서 소통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마스크를 쓰기만 해도 의사소통 난이도가 급증하는데, 가상 배경에서 아바타끼리 대화하는 것이 만족할만한 경험일까?
엔터테인먼트에서 VR의 가능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VR 컨텐츠는 기존의 것보다 더 깊이 있는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커버그가 꿈꾸는 메타버스는 그보다 훨씬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대전제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실적이 증명한다. 2023년 1분기 공시에서 AR/VR 부문 매출은 3억 3900만 달러로 YoY -51%이다. 반대로 운영 손실은 39억 9000만 달러로 YoY +35%이다. 다행히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실적이 반등하며 (전체 매출 YoY +3%) 체면은 지켰지만, 리얼리티 랩의 민낯은 꽤 처참하다 (디자인도…)
apple vision pro
이제 애플의 방식을 살펴보자. 나는 비전 프로의 핵심이 시공간의 확장을 대중에게 와닿는 방식으로 제시했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디바이스를 착용하면서 대면 소통(face to face communication)을 유지 및 확장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를 4가지 요소로 나누어 설명해보고자 한다.
공간을 배경으로 디스플레이를 띄우는 VisionOS 제작
다른 VR기기들과 다르게, 디바이스를 착용한다고 시각이 차단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비전 프로를 착용하고 있어도 현실과 연결된 느낌을 유지할 수 있다. 물론, 몰입을 위해서 가상의 배경을 설정하고 현실과 분리된 정도를 Digital Crown을 통하여 조절할 수 있다.
버튼 학살자 애플이 따로 스크롤 휠을 배치할 만큼 현실과 가상세계를 오가는 행위를 중요 요소로 선정했다. 이는 유저에게 상황에 알맞은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제어권을 준다.
Eyesight 기능을 통하여 주변 사람과 분리되지 않음
Eyesight 기능은 유저 가까이에 사람이 다가가면, 투명도가 조정되어 유저의 눈이 보이고 유저도 주변 사람들을 볼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사용자가 Digital Crown으로 가상세계에 집중하도록 설정했다면, 다른 사람에게 사용자가 무엇에 집중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시각적 표시를 해준다.
기기를 착용해도 면대면 소통을 가능하게 해준다. 기기를 착용하면서도 주변 사람들과 쌍방향 연결을 잃지 않도록 돕는 기능이 돋보인다.
Facetime시 아바타가 아닌 얼굴을 AI 실시간 생성 후 송출
앞서 강조했던 면대면 소통을 온라인 환경에서도 실현했다. 기기를 끼고 있으면 가상의 아바타로 표현될 줄 알았는데, 얼굴을 스캔하고 AI로 생성하여 최대한 현실적인 소통이 가능하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프라인이건 온라인이건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소통할 수 있고, 각자의 환경에서 분리되지 않는다.
핸즈 프리, 손과 몸의 해방
비전 프로는 손에 컨트롤러를 쥐지 않고 시선과 손동작으로 조작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할 때 손과 눈이 한꺼번에 움직이기에 나름 익숙한 패턴으로 느껴진다 (UX는 애플이 세계 최고이고, 이가 내 전문 분야는 아니기에 크게 태클하고 싶진 않다).
이의 결과물로 유저의 손과 몸이 자유로워진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로 느껴진다. 우리의 의사소통 중 70% 이상이 비언어적이다. 그 중 절반 가량이 손짓과 몸짓 (body language)에서 온다고 하니, 컨트롤러로 인하여 손의 자유도를 잃는 건 의사소통에 치명타일 것이다.
총 4가지 요소들을 살펴보며, 애플이 치밀하게 의사소통에 장막이 될만한 요소들을 제거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앞서 언급한 시공간의 확장: 1) 타인과 곁에 있지 않아도, 곁에 있는 것 같은 경험 2) 과거의 경험을 3D로 플레이백하는 경험 3) 3D 생성된 환경에서 거대한 스크린을 보는 경험에 이가 합쳐져 비전 프로가 완성된다.
비전 프로는 단순히 시공간의 확장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디바이스를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설계되었다. 그것이 9분짜리 영상으로 설득력 있게 전달했기에 전세계가 열광했다고 생각한다.
technology as a tool
애플이 기술집약적인 회사이긴 하지만, 타 빅테크 회사들과 다르게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이에 연관된 종현님의 코멘트:
(예상했지만) 그동안 애플이 새롭게 등장시켰던 기술들이 결국 이 새로운 제품을 만들면서 구현해온 만들어온 기술인 게 이제는 선명하게 보인다. 공간 오디오, 페이스 아이디, LiDAR를 이용한 공간 인식, 애플 실리콘(M1,M2) 등. 몇 년에 걸쳐서 만들었다고 몇 번이나 강조하는데, 그럴만하다.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기술들을 만들어왔고, 그렇기에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중심에 오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애플은 어떻게 이렇게 혁신적인 제품을 기획한 것일까?
understanding us, humans
몇 년전 미국 유수의 테크 회사들(구글, 시스코 등)에서 커리어를 쌓아오신 (대)선배님과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대목이 있다. 회사마다 사내에서 가장 파워풀한 부서가 존재하는데, 그것이 회사의 색깔을 결정한다는 이야기. 구글과 엔비디아는 엔지니어 중심, 반대로 애플은 프로덕트와 디자인 중심이라고 말씀해주셨었다.
애플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는 부서(프로덕트, 디자인)들이 큰 힘을 쥐고 있기에 이런 혁신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주제넘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한국에서 앞으로 세상을 바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부분에서 투자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슬프게도, 학교에서 흔히 듣는 이야기가 ‘UX 디자인하려면 무조건 미국을 가라’이다.
인간을 이해하고, 그를 기반으로 제품을 제작하고, 실험하는 수준 높은 연구 기관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다. 마치 MIT 미디어 랩과 같이 말이다.
actionable insight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액션을 취해야 할까? 오늘의 이야기에서 배워갈 수 있는 레슨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역량이 인간에 대한 이해라는 것이다.
흔히 Big Wave를 예측하고 그 흐름에 올라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앞으로 다가올 흐름에 AI라는 촉매가 결합하여 기존의 흐름보다 빠르고, 다양한 측면에서 다가올 것으로 생각된다 (AI, Web3, Quantum Compute, Fusion Energy, Self Driving, Biotechnology, Sptial Compute… the list goes on)
그러나 거시적인 흐름도 개개인의 사람들이 만들어나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데이터로 세상을 보는 것은 논리적이지만, 그 데이터를 이루는 “인간”은 그리 논리적이지 않다.
그렇기에 숫자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건 반쪽짜리 시각이다: 단기적인 트렌드를 읽기에 적합할지는 몰라도, 장기적 시각을 갖추기 위해선 인문학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아직 한참 부족하지만, 내가 행하고 있는 두 가지는 첫째,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는 것. 유현준 건축가의 공간의 미래를 읽으면서 그 효과를 체감했다. 둘째, 직접 실행하고 실험하는 것. 머릿속으로만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뉴스레터를 쓰는 것이 그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있다.
앞서 내가 깊은 관심을 느끼는 분야들을 정리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내가 “인간”이라는 존재를 과학/통계학적으로 분석하고 모델링하는데 끌린다는 것이다. 이에 더불어 인문학에서 오는 정성적인 사고까지 더해진다면 내 사고를 더더더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nding thoughts
나를 창업의 길로 이끌었던 건 다름 아닌 잡스였다. 중학교 때, 하루에 6~7시간씩 유튜브를 보던 시절, 우연히 그의 Stanford 졸업식 연설을 보았다. 그거 보고, ‘아 나도 CEO 하고 싶다’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10년 조금 덜 지난 지금, 아직도 그 생각하면서 지내고 있을 줄은 몰랐지만.
애플은 잡스가 떠난 후에도 그의 명성에 걸맞게, 여전히 혁신하고 있다. 내가 세울 기업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그 시각을 100% 맹목적으로 받아들인다는 / 받아들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좋은 인사이트가 정말 많았고, 나의 세계관과 얼라인(align)이 잘 되었기에 인용하고자 한다. 비판적 코멘트는 언제나 환영이다.